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3대 대통령 선거 (문단 편집) === 지역구도의 강화 === 전술한 것처럼, 선거구도가 이렇게 정해지면서 각 후보가 자신의 지역을 기반해서 결집하는 구도로 선거양상이 흘러갔다. 네 명의 유력한 후보들은 각기 출신 지역의 지역감정을 고취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. 이 선거는 한국 선거의 역사에서 지역감정이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된 최초의 선거라 할만했다. 가령 [[노태우]] 후보는 전주에서 유세를 가질 예정이었지만, 7년 전 5.18의 원흉인 신군부의 일원이었던 노태우 후보에 대한 전북 주민들의 반감으로 유세 현장에서 폭력 시위가 발생했고, 결국 유세가 중단되었다. 이 시위는 KBS와 [[https://imnews.imbc.com/replay/1987/nwdesk/article/1798736_29505.html|MBC 9시 뉴스]]에서 방영되었다. 이후 김대중이 광주에서 80만 인파를, 김영삼이 부산에서 100만 인파를 동원하자, 각 후보의 연고지역별로 유권자들이 뭉치는 현상은 가속화되었다. 노태우는 [[대구광역시]]와 [[경상북도]](TK)의 지지와 함께 다른 지역(여권 성향이 강한 [[경기도]], [[강원도]]와 [[충청북도|충북]], 서부경남)의 유권자들을 모았고, 김영삼은 [[부산광역시]]와 [[경상남도]](PK)를 중심으로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. 그리고 김대중은 [[전라도]], 김종필은 [[충청도]]를 중심으로 지지층을 결집시켰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